동시통역 수업의 시작, 어두운 터널의 시작.

첫 동시 수업

By: Gloria Lee

첫날 동시 통역 수업은 어두운 터널이었다. 길고 어둡지만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터널 같았다. 연사의 말이 시작되면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우선 우리 1학년 같은 초보를 위한 동시 통역 수업의 관건은 split attention을 할 수 있도록 뇌를 훈련 시키는 것이었다.

인간의 뇌는 한 곳에 집중하게 되면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쏟는데 익숙해져 왔다. 특히 청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뇌와 말을 조리 있게 구사하도록 하는 뇌는 동시에 신호를 받고 보내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동시에 말하면서 대화하지 않고 서로 번갈아 가며 말하기 듣기를 하나씩 충실히 한다. 그렇게 뇌는 주요 영역으로 집중력을 한곳에 몰아 주는데 익숙해져 있다.

나는 동시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뇌의 집중력 “쏠림 현상”은 자연적이며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뇌의 현상을 바꿔야 했다.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따지기도 전에 우리는 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먼저 숫자를 천부터 거꾸로 세면서 연사의 말을 듣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른 연습으로 연사가 말을 시작하면 5초 뒤에 연사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생각만으론 참 쉽다. 그런데 직접 해 보니 연사의 말을 그대로 따라만 하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감명 깊게 봤던 영화나 책 줄거리 등을 말하는 동시에 연사의 말을 듣고 그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물론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모두 제대로 된 문장 구성이어야 했다. 말을 하자니 귀가 안 들리고, 귀로 듣자니 이상한 말이 입에서 나오고 정신이 없었다. 훈련하는 내내 어둡고 긴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우리 1학년들의 동시 통역 훈련의 기본인 split attention 연습으로 2학기 첫 동시 수업은 시작되었다.

동시통역 수업 진행 하시는 교수님 뒷모습

동시 통역을 생각하면 단순히 연사의 말을 듣고 그 말을 그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 통역 훈련을 하는 우리마저 연습을 끝내고 부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다시 동시 통역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부스로 들어가 헤드폰을 끼고 연습을 시작할 때는 동시통역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통역을 한다는 간단한 논리 뒤에 얼마나 수 많은 일들이 긴 터널을 지나며 일어나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듣는 것과 동시에 말을 해야 하며, 앞서 나가는 연사의 말을 기억해서 내뱉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적절한 단어 선택과 완벽한 문장을 구성 해야 하며 다른 언어로 바꿔야 하고, 혹시라도 잘못 시작한 문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끝내는 순발력과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그 외에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동시통역 부스에서는 일어난다. 내가 느낀 건 동시통역 부스에서의 1초는 부스 바깥의 10초와 같았다. 평소 다른 사람들이 10초 동안 듣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동시 통역 부스 안에서는 모두 1초 안에 해내야 한다. 지금은 우리에게 영원처럼 느껴지는 이 1초를 이제 잘 활용하여 10분도 1분처럼 느낄 수 있어야겠다.

동시 통역사들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긴 터널을 짧게 줄여 자유자재로 다니는 사람들 같았다. 우리는 이제 그 긴 터널을 출발했다.

지금은 끝이 없어 보이지만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짧디짧은 터널로 깎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잘할 수 있다.

동시통역의 긴 시간을 경험하는 부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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